모든 요일의 기록, 김민철(2015)




라쇼몽, 카뮈


내가 이해할 수 없어도, 내가 껴안을 순 없어도, 각자에겐 각자의 삶이 있는 법이다.



p.76 일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당장 떠날 용기도 없으면서, 정말 거기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나는 막연한 꿈을 꾸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매일을 버티다보니 나중에는 내가 무엇을 위해 버티는지도 잊어버렸다. 어느새 내가, 내 청춘이 내 일상이 불쌍해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건 나였다. 내 일상을 망치고 있는 것은. 내가 범인이었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었다. ... 나를 구원할 의무는 나에게 있었다. 매일은 오롯이 내 책임이었다. 그 깨달음에 앞의 글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무뎌질 때마다 내가 쓴 이 기이한 반성문을 다시 꺼내 읽었다. 읽고 읽고 또 읽었다. 나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p.84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참으로 이곳에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 아니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올 것이 아니다. 이곳은 내일의 행복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올 곳은 아니다. 지금 여기서 행복한 사람, 가득하게, 에누리 없이 시새우며 행복한 사람의 땅"이라고 지중해에 대해 딱 잘라 말을 했다. 


p.260 쓰기 위해 산다

뛰어난 문장가도 아니면서, 그럴듯한 시나 소설이나 에세이를 쓰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쓴다. 아무도 못 보는 곳에도 쓰고, 모두가 보는 곳에도 쓴다. 쓰고서야 이해한다. 방금 흘린 눈물이 무엇이었는지, 방금 느낀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왜 분노했는지, 왜 힘들었는지, 왜 그때 그 사람은 그랬는지, 왜 그때 나는 그랬는지. 쓰고 나서야 희뿌연 사태는 또렷해진다. 그제야 그 모든 것들을 막연하게나마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쓰지 않을래야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요즘 도무지 일기장에 쓸 말이 없어. ... 그 정도로 마음이 편안한 것 같아." 이전의 남자친구에게서는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이었다. 좋아서 불안했고, 싸워서 불안했고, 내가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불안했고, 잠깐의 침묵이 불안했다. 그러니까 나는 끝없이 상처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늦는 문자메시지 답장에, 나와는 상관없는 그의 결정에, 나의 불안을 누치 채지 못하는 그의 웃음에, 싸늘한 손에. 그를 좋아하는 만큼 나는 더 상처받았다. 그래서 썼다. 쓸 수밖에 없었다. 그 불안과 그 상처를 그에게 다 드러낼 순 없었다. 그러기엔 내가 자존심이 셌다. 그리하여 말로 하기엔 너무 구차한 그 작은 상처들을 나는 일기장에 털어놓았다. 누군가에게는 털어놓아야 내가 살 수 있었다. 쓰고 쓰고 또 썼다. 그렇게라도 쓰고 나면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일기장은 늘 침대 옆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면서는 쓸 말이 없었다. 나를 위로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불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았으니까. 그는 내게 어떤 상처도 주지 않았으니까. 자연스럽게 일기장은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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